병원 기반 협진의 어려움과 한의사의 대응 노력 대한 질적연구 수행
원광대 한의대 임정태 교수 연구팀·국립중앙의료원 윤인애 과장 공동연구
‘BMC Complementary Medicine and Therapies’에 연구결과 게재

[한의신문]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임정태 교수 연구팀과 국립중앙의료원 침구과 윤인애 과장이 2019년부터 국립중앙의료원의 연구비 지원으로 공동으로 진행해온 의·한 협진 연구가 결실을 맺었다.
앞서 연구팀은 2021년 ‘Integrative Medicine Research’ 저널에 ‘의·한 협진에 대한 의료직군의 태도, 인식, 요구에 관한 문헌고찰(Perception, attitude, and demand for Korean medicine and Western medicine collaborative treatment of medical occupational groups in Korea: A scoping review)’ 논문을 선행 연구로 출판한 바 있다.
이에 연구팀은 선행 연구를 발판으로 한국의 병원 현장에서 의·한 협진의 실제 운영 과정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제도적·정책적 한계 및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한의사들의 현실적 대응 노력을 상세히 조망한 질적연구를 완성했다.
특히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학술지 ‘BMC Complementary Medicine and Therapies(IF 3.4, Q1)’에 게재됐으며, 한국 의료현장의 협진 실태를 공공병원, 대학병원, 사립 병원 등 다양한 형태의 의료기관에 속한 한의사들의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조망한 첫 번째 대규모 질적연구로 평가받고 있다.
26명 한의사 심층면담 통해 협진 현실 ‘재구성’
연구팀은 전국 10개 병원(대학부속병원·공공병원·민간병원)에서 직접 협진 경험을 가진 한의사 26명을 대상으로 11회의 심층면담과 포커스그룹을 진행했다. 참여자들은 내과, 재활의학과, 침구과, 부인과, 신경정신과 등 다양한 전문 분야의 전공의 및 전문의들로, 최소 1개월 이상의 협진 경험을 보유한 임상 전문가들이었다.
질적 내용 분석을 통해 도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재 병원 내 협진은 주로 의뢰 기반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초기에는 뇌졸중과 근골격계 질환 중심으로 시작됐지만, 점차 암, 피부질환, 부인과 질환, 주요 외상, 수술 후 관리 등으로 적용 범위가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연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발견 중 하나는 협진 요청의 비대칭성이었다. 즉 입원환자 처방 갱신, 진단검사, 응급상황 대응, 환자 요청 등 한의사가 의사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경우는 매우 빈번한 반면, 의사가 한의사에게 협진을 요청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이러한 불균형은 진단기기 접근 제한과 관련된 법적 권한 차이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지만, 동시에 의료진 간 인식 격차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협진 활성화를 가로막는 주된 요인은?
연구팀은 연구를 통해 협진 활성화를 가로막는 핵심적인 장애요인을 세 가지로 제시했다.
먼저 병원 차원의 제도적 지원 부족으로, 대부분의 병원에서 협진을 위한 전담 코디네이터 부재, 협진 프로토콜 개발 및 적용 지원 미흡, 의료진 간 갈등 중재 시스템 부재, 추가 업무에 대한 보상 체계 미비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또한 두 번째 원인은 의사들의 협진에 대한 무관심과 편견이다. 일부 의사들이 한의학의 잠재적 효과에 대한 이해 부족, 한의사의 전문성 불인정, 환자의 한의학 치료 선호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 등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마지막 주된 원인으로는 국가 정책의 협소한 인정 범위로 인한 단편적 협진 운영을 꼽았다. 즉 현행 보험 정책의 제한적 인정 범위, 한의사와 의사 간 법적 권한 차이, 기관 간 협진에 대한 체계적 지원 부족 등이 협진의 지속적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애요인 개선키 위한 한의사의 노력은?
이같은 어려움에도 불구, 연구에 참여한 한의사들은 다양한 수준에서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대응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먼저 한의사들은 ‘과학적 소통 전략’으로 한의학을 현대 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생의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해 의사들과 환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소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 참여자는 “우리는 서로 다른 도구와 프레임워크를 사용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같다”면서 “올바른 정보를 교환하면 잘 어울릴 수 있고 협진이 번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연구 협력을 통한 신뢰 구축’ 측면에선 많은 한의사들이 의사들과 공동연구를 진행해 상호 이해를 높이고 있다. 실제 “가벼운 만성 질환에서 한의학이 도움이 될 수 있는 협력 연구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래야 의사들이 점차 한의사들이 정말 노력하고 연구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고, 이것이 작더라도 신뢰의 기반을 확립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와 함께 ‘환자 중심의 접근’을 위한 노력으로 한의사들은 환자의 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보험 적용 치료 옵션을 탐색하고, 대기시간을 최소화하며, 현실적인 치료 목표를 설정해 환자 만족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는 한편 ‘관계 구축을 위한 인내’ 측면에서는 “그들이 나를 무시해도 여전히 인사를 한다. 몇 년이 지나면서 약 절반이 결국 인사를 받아주고, 그것이 작은 문을 연다”는 한 참여자의 증언처럼, 개인적 차원에서의 꾸준한 관계 개선 노력도 지속적으로 기울이고 있다.
협진의 정책적 개선을 위한 방안은?
또한 연구에서는 한의사들이 협진에 대해 양면적 감정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즉 한편으로는 “환자 만족도가 높고 결과가 좋아 보인다”, “객관적인 도구로 측정하지는 않았지만, 환자들이 협진을 받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 얼마나 잘 따라오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는지를 본다”, “협진은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 모두에서 분명히 이익이 있다” 등 협진의 가치를 확신하고 있는 반면 “모든 협진 노력을 위해 한의학 병원과 의학 병원의 간호사들, 전공의들, 교수들, 관리자들 모두를 설득해야 한다”, “이미 바쁜 상황에서 그 모든 것을 혼자 하는 것은 지친다” 등과 같이 개인적 부담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특히 이번 연구에서는 향후 협진 활성화를 위해서는 △한의사의 기본적 진단검사 권한 확대 및 보험 적용 △협진 인정 범위의 현실적 확대 △기관 간 협진에 대한 체계적 지원 시스템 구축 △협진 연구 성과의 임상 현장 적용을 위한 후속 지원 체계 마련 등 구체적인 정책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 한 참여자는 “한의학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지만, 반대로 때로는 한의학이 더 잘할 수 있다”면서 “의사들이 잠시 생각해보고 ‘여기서는 한의학이 더 유익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추천한다면, 환자들이 고통받거나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없을 것”이라며, 상호보완적 의료체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왼쪽부터 임정태 교수, 윤인애 과장.
6년간의 프로젝트, 정책 변화의 시발점 되길
연구책임자인 임정태 교수는 “2019년부터 시작해 2025년에 마무리하는 이 프로젝트는 정말 애정이 많이 담긴 연구였다”면서 “한국 의료현장에서 한의사들이 경험하는 협진의 실제 모습과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도전과제들을 솔직하게 조명함으로써, 향후 정책 개선과 임상 실천 변화의 기초자료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공동 교신저자인 윤인애 과장은 “국립중앙의료원에서는 현재 호스피스 병동에서의 의·한 협진 기반 암환자 진료 연구를 계획하고 있다”며 “이번 질적연구의 경험을 바탕으로 의료진 간 소통과 관계 구축을 더욱 체계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면서, 후속 연구 계획을 공유했다.
또한 1저자인 박다솔 연구원은 “이번 연구는 협진 현장에서 직접 뛰고 있는 한의사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며 “진정한 파트너십과 전문적 정체성 보존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것이 협진 발전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단순히 현상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의사들의 창의적 대응 전략과 정책적 개선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한국 통합의료 발전의 실질적 로드맵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환자 중심의 진정한 협진 문화 조성과 제도적 뒷받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정책 결정자들과 의료계의 적극적 관심과 대응이 기대된다.
출처 : 한의신문(https://www.ako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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