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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시간”
“서로가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시간”
한의과대학2024-06-03

‘환자를 치료한다’는 의료의 본질을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된 계기

원광대학교 한의학과 본2 박지민(사진 오른쪽)

가까운 위치에 있는 한국과 일본은 많은 분야에서 상호 간 영향을 주고 받아왔다. 전통 의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과 일본의 전통 의학은 각 나라에서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침과 뜸, 부항, 마사지 등의 의학 요법을 사용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학교에서 과제를 하기 위해 논문을 찾을 때도, 일본에서 진행된 연구를 적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전통 의학 요법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의료 체계가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 전통 의학 교육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등 실질적인 내용은 현지에서 보지 못하면 알 수 없었기에 늘 궁금증이 있었다. 그러던 중 감사하게도 대한한의학회 측에서 ICMART 홍보 차 전일본침구학회 동행을 제안해주셨고, 일본 현지에서 일본의 전통 의학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는 소중한 여정을 함께하게 됐다.

일정 첫째 날, 대한한의학회와 대한침구의학회의 임원 분들 그리고 전일본침구학회 임원 분들과 함께 식사 자리를 가졌다. 다음 날부터 진행될 제73회 전일본침구학회 학술대회를 축하하고 오는 9월 제주도에서 개최될 ICMART 2024에서의 협력을 도모하는 자리였다. 능숙한 일본어로 전일본침구학회 분들과 대화를 나누시는 임원 분들 사이에서,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한국과 일본 침구 의학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논의하시는 대화를 들으며, 학교에서 눈앞의 공부에만 급급하던 것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계를 엿보는 기분이었다. 교수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일본의 침구학이 어떠한지 더욱 궁금해졌다. 용기를 내어 나의 앞에 앉아계셨던 일본 도호쿠 대학병원 캄포의학과 소이치로 가네코 교수님께 짧은 영어로나마 궁금했던 것들을 질문을 드렸다. 감사하게도 교수님께서는 모든 질문에 정성껏 대답해주셨다. 

한의사가 침, 뜸, 부항, 추나 요법을 모두 시행할 수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전통 의학의 분과가 나누어져있다. 한약을 사용하는 일본의 전통 의학은 ‘캄포의학’이라고 불리는데, 제도적으로 의사가 한의학 연구를 통해 한약 처방을 내릴 수 있다. 일본에는 한의학을 연구하는 의사들이 많고, 한약 또한 자리를 잡아 처방이 많이 이뤄진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약과 양약이 아예 다른 약으로 인식되곤 한다. ‘양약 먹고 있어서 한약은 안먹으려구요’와 같은 우려 섞인 말들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한약이든 양약이든 모두 ‘약’이다. 약이 진정한 약이 될 것인가 아니면 독이 될 것인가는 의사의 올바른 진단과 처방에 달려있다. 일본에서는 그러한 인식 하에 한약이 받아들여진 모습이었다. 우리나라도 추구해야하는 바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서는 캄포의학 외에 침구사 제도가 따로 존재하기 때문에 침구 요법의 사용은 침구사에게만 허용되어있다. 교수님께서는 치료를 위해서는 침구와 한약의 사용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제도적으로 치료 권한이 분리되어 있다보니 현실적으로는 통합적 치료가 어렵다는 점에 아쉬움을 표하시며, 한국에서는 한의사가 다양한 치료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일본도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길 희망한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한국의 의료 체계를 당연한 것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일본의 의료 체계를 접하며 통합적 치료를 위해서는 어떠한 의료 체계가 구성되어야 할 것인가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일본 침구의 현장을 보고 느끼다

일정 둘째 날, 오늘부터 시작되는 제73회 전일본침구학회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부터 바삐 움직였다. 교수님께서는 센다이 지역은 해가 너무 일찍 뜨는 탓에 이른 시간부터 눈이 떠졌다고 하셨지만, 사실 나는 처음으로 해외 학회에 참석한다는 들뜬 마음에 일찍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학술대회가 열리는 곳은 센다이 국제센터. 푸르른 잎이 흔들리는 나무들 사이를 지나 학회 장소에 도착했다. 

캄포 의학 및 침구 의학에 종사하고 계시는 의료인들부터, 관련 의료 기기를 판매하시는 관계자 분들, 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일본 침구의 현장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로 학회 현장이 북적였다. 반짝이는 눈빛만은 모두가 같았다. 학술대회의 개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학회 참관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일본 한의학 의료기기 판매 부스들이 모여있는 전시장이었다. 올해 초 한국에서도 의료기기 전시회인 KIMES에 방문했었는데, 마치 그 때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속에서도 일본만의 특색을 찾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경혈에 대한 책이 있었는데, 해당 경혈의 주치 병증을 캐릭터를 활용해 만화처럼 표현해두었다. 점구용 쑥을 판매하는 부스에서는 뜸 모티브의 캐릭터를 활용해 업체를 부각하기도 했다. 

젊은 세대에게는 한의학이 다소 낯설고 과거의 학문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캐릭터와 쉬운 표현 방식이라는 수단으로 친숙하게 다가가는 모습이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부스들 중에서도 유독 사람이 북적이는 곳이 있었는데,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침 제조 업체 ‘SEIRIN’의 부스였다. 우리나라 침과 달리 침의 손잡이가 플라스틱으로 되어있어서 신기했다. 플라스틱 손잡이는 환자의 불편함을 완화하고 바늘이 구부러지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침의 규격에 따라 손잡이가 여러 색상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실용성과 디자인이 모두 돋보이는 포인트였다. 

우리나라 의료기기 전시회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색다른 기기들도 있었다. 타침은 일본의 전통적인 치료법으로, 짧고 굵은 막대기와 망치를 이용해 두드려서 자극을 가한다. 현재는 스테인리스, 금, 은 등 다양한 소재로 현대화되어 사용되고 있었다. 통증을 최소화하며 자극을 가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으로, 프레스 니들도 있었다. 플라스틱 케이스와 보호통을 통해 시술자가 표면을 건드리지 않고 자극을 줄 수 있다. 

일본은 침구 시술이 낯선 편이라, 아플 것 같다라는 인식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전시장 제품들에서도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려고 하거나 시술 시 통증을 최소화하려는 방향으로 제품을 개발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후 남동우 교수님과 이시자키 나오토 교수님이 좌장으로 진행하시는 한일심포지엄에 참석했다. 첫 번째 연좌는 국립중앙재활원의 손지형 교수님으로, 주제는 국립재활원의 한·양방 협진 치료 개요 및 향후 방향이었다. 국립중앙재활원에서 뇌졸중과 척수 손상 환자, 편마비성 어깨 통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양방 협진치료를 진행한 과정과 그에 대한 긍정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하셨다. 

손지형 교수님은 대만드 인터뷰에서도 뵈었던 분으로, 반가운 마음에 더욱 귀 기울여 듣게 됐다. 이어서 경희대학교 서병관 교수님께서 ‘경희대학교 통합의학센터의 척추 수술 후 회복력 향상을 위한 통합적 접근’을 주제로 발표하셨다. 이번 세션에서도 마찬가지로 경희대학교 통합의료센터에서의 한·양방 협진 치료 체계의 방향성에 대해 논의하고 척추 수술 후 회복 강화 연구에 대해 설명하셨다. 통합의료서비스 모델을 개발하고 효율적인 협진 병원 체계를 구축하고자 힘쓰고 계신 교수님들의 노력이 느껴져서, 나도 괜스레 뿌듯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발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통합 의료 체계에 관심을 가지고 질문하였고, 연좌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한·양방 협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원활한 협진이 이뤄질 수 있는 체계를 모색하고자 하는 단계에 있었다. 체계의 구체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지만, 통합적 치료라는 같은 목표점을 향해 나아가는 두 나라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그 선봉에서 올바른 방향을 끊임없이 고민하시는 교수님들의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현실에서 때로는 ‘환자를 치료한다’라는 의료의 본질을 망각하고 그저 하나의 수단으로서 여기는 안타까운 상황을 목도하고는 한다. 그럴 때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환자를 치료한다’라는 의료의 본질이다. 이번 심포지엄을 들으며 한의사로서 그 본질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되새겼다. 

세계 속의 한의학, ICMART 2024!

이번 전일본침구학회 참석을 통해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가 곧 발전의 초석이라는 것이다. 다른 환경에 있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고 나의 세계가 확장된다는 것을 몸소 경험했다. 그러한 측면에서 올해 개최되는 ICMART 2024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높아졌다. 

ICMART 2024는 오는 9월 27일부터 29일까지, 제주도에서 개최된다. ICMART는 전 세계의 침술 관련 학회가 지식을 교환하고 침술의 발전을 도모는 세계의료침술대회이다. 전일본침구학회 또한 대한한의학회의 소개를 통해 ICMART에 가입해 그 일원으로 참여한다. 

이번 한일심포지엄에서 논의되었던 바와 같이, 일본에서는 통합의료체계 구축 및 전통의학의 과학적 근거 도출에 힘쓰고자 하는데 ICMART를 통해 그러한 부분을 배울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전 세계 학술교류의 장이 제주도에서 개최되는 만큼, 우리나라의 한의대생과 한의계 종사자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전일본침구학회 기간 동안 일본의 참석자 분들이 우리나라 한의학의 체계와 발전 동향에 대해서 궁금해하시고 그 수준에 감탄하시곤 했다. ICMART를 통해 이제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의학을 알릴 수 있으리라는 설레는 마음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ICMART 2024 참석을 통해 학술 교류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학술 교류의 현장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대한한의학회의 이재동 수석부회장님, 남동우 국제교류 이사님을 비롯한 대한한의학회의 관계자 분들께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출처:한의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