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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학문, 한의학과 법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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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과대학2023-05-16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민용기 천안동의보감한의원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제12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민용기 천안동의보감한의원 장을 만나 합격 소감과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에 관한 그의 관점을 들어봤다. 민 원장은 서울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이후, 침으로 기절한 사람을 회생시키는 장면을 목도하고 한의학에 매료돼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에 입학했다. Q.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소감은? 우리 고유의 의학을 지키는 한의사이 면서 법률전문가가 됐다는 사실이 매우 자랑스럽다. 한의사로서, 한의학 연구자로서 연구에 한계를 느낄 때마다 힘이 많이 들었다. 한의학이 보다 현대적인 의미로 더욱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으나 한의계 내·외적 환경이 녹록지 않았다. 한의학이라는 학문이 가진 독특한 세계관으로 인해 발생하는 언어적 고립이 라는 태생적인 한계와 한의학이 좀 더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발전하는 데 장애가 되는 제도적인 한계가 더해지면서 한의사로서의 삶이 많이 정체되고 있다는 생각에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개원한 한의사로서 자칫 삶이 나태해질 수 있는 와중에 작은 성취를 통해 한의학이 제도적으로 발전할 기회를 찾는데 자그마게나마 보탬이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새로운 희망도 가져 본다. Q.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는? 제가 한의원을 하는 지역에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약자에 해당하는 분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분들에 대한 의료보장 혜택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는 반면 법적으로는 많은 불이익을 당하고 있음에도 법률적 조력을 충분하게 받지 못하고 있다. 어떤 경우는 불이익을 당했다는 사실 조차 깨닫지 못할 때도 많고, 불이익을 당했어도 어떤 조치를 할 수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또 어떤 조치를 하고 싶어도 법률적 조력의 문턱은 꽤나 높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 한의학은 16세기의 동의보감에만 근거한 의학으로 박제되기를 강요받고 있다. 한의학적 성과에 과학적 연구가 더해지는 순간 이미 그 성과는 한의학이 아닌 것이 되고 한의사는 그 성과를 사용하지 못하는 지위에 있다. 이러한 법적 해석에 명백한 근거가 있어 보이지도 않고 힘 의 논리에 의해 강요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런데도 한의계는 이러한 불합리함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의사는 16세기 사람이 아니고 21세기에 의료를 담당하고 있음에도 16세기의 의료인이기를 강요받고 있다. 그냥 단순히 법률적 지식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이런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았다. 뭔가 더 적극적인 삶의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돼 법률가가 되어보자고 결심하게 됐다. Q.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로스쿨에 합격할 때 나이가 50이었다. 저 자신이 병약한 사람이었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았으며, 한의원을 운영하는 원장으로 해야할 역할도 존재하고 있었다. 겁 없이 로스쿨에 지원해 합격하고 나니 이 모든 게 감당해야 할 현실이었다. 뭐든지 할 수 있을것 같았는데 마음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진료를 하면서 학교에 다니고, 일주일씩 계속되는 졸업시험을 1년 동안 4번이나 보고, 결국 변호사시험까지 치르게 됐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끝까지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었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끝까지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잘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하지 않았으면 후회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운이 좋게도 한 번에 합격할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Q. 한의학과 법학, 두 학문에 대한 생각은? 한의학은 객관적 실재가 무엇인지에 더욱 중심을 두는 학문이라면, 법학은 무엇이 더 옳은 것인지에 중심을 두는 학문인 것 같다. 두 학문간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에도 한의학은 병든 인간의 아픈 부분을 보살펴 건강한 삶으로 인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법학은 정의를 구현하고 부당한 불합리를 최소화해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구현함으로써 행복한 삶으로 인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두 학문 모두 인간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학문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Q. 대법원의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 판결에 대한 견해는? 그동안 법률적으로 분명하게 한의사의 의료영역이 제한돼 있지 않음에도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편견이 지나치게 강했던 가운데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한의사에게 우호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의사가 초음파를 실질적으로 다루고 진단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은 한의계에 주는 의미가 남다르다. 한의계 스스로 환골 탈태해 현대의학을 충분히 숙지한 일반 의로서의 역량을 기본으로 갖춘 상태에서 그 위에 한의사로서의 역량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하고 주장하지 않는다면, 한의사가 일반의로 인정받아 기본적인 현대의약품을 사용하고 현대의 진단기기와 치료기기를 자유롭게 사용해 한의학적 치료를 해나가는 것은 요원할 것이다. Q. 다른 영역 진출에 도전하는 회원들 에게 조언한다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한의학은 의학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회적 제도적 상황은 한의학을 의학으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때가 많다. 심지어 일부 양의사들은 한의학이 없어져야 할 의미 없는 것이라는 편협한 생각까지도 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인 상황은 한의사들이 너무 개원 일변도로 사회진출이 편향되어 있고 사회적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한 탓도 있지 않은가 생각하게 된다. 한의사들도 보다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한의학의 저변을 확장하고 한의학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한의학에 적용되는 다양한 제도들을 바꾸는 데 힘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Q. 기타 전하고 싶은 말은? 한의사 동료들 사이에 흔히 ‘9말0초’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실 텐데 한의사들 중 여기에 해당하시는 회원들의 패배감이 유독 심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큰 기대만큼이나 상실감이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저 역시 한의학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연구하면서 한계를 많이 느끼고 많이 좌절했지만, 한의학이 잘못됐거나 한의학을 선택한 선택이 잘못됐던 것이 아니라 한의학을 대하는 제도가 잘못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모든 학문은 사회가 발전하면 그 발전의 토대 위에서 더욱 발전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한의학은 그런 기회를 박탈당해 왔다. 이러한 잘못된 상황을 용인하면서 한의학의 미래를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패배감에 젖어있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한의계 내부의 교육환경을 바꾸고 커리큘럼을 현대적으로 갱신하고 더 적극적으로 우리 자신을 정의하고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